가끔은 아주 작은 우연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한낮의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도시의 소음이 창밖에서 잔잔하게 울려 퍼졌지만, 그 소음마저도 오늘은 어딘가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커피잔을 손에 들고 창문 앞에 서서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몇 주째 고민하던 일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지난봄에 있었던 작은 사건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지금 나의 삶에 이렇게 깊이 스며들어 있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날도 오늘처럼 날씨가 좋았다. 평소처럼 직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늘 그렇듯 이어폰을 끼고 음악에 집중하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는 길모퉁이에서 조그마한 노란 꽃 한 송이가 눈에 띄었다. 그 꽃은 인도 가장자리에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안쓰럽기도 하고, 동시에 용감해 보이기도 했다. 사실 길을 가다 작은 꽃 한 송이를 본다고 해서 특별할 건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발걸음이 멈춰버렸다.
나는 그 꽃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별생각 없이 핸드폰을 꺼내 꽃 사진을 찍었고, 다시 일어나 길을 떠났다. 그 작은 꽃이 내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내 마음이 조금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던 순간이었을까? 그 대답을 지금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작은 것들에 더 자주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노인의 미소, 비 오는 날 바닥에 맺힌 물방울 위로 퍼지는 잔물결, 그리고 길가에 떨어진 낙엽의 무늬. 이런 사소한 것들에 대해 무심했던 과거의 나와 달리, 지금의 나는 그런 순간들에서 이상한 따스함과 기쁨을 느낀다.
삶은 언제나 크고 화려한 사건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만든다. 그런데도 종종 큰 계획이나 특별한 성취만을 쫓느라 주변의 아름다움을 놓치곤 한다. 그 작은 꽃을 만난 이후로 나의 삶은 조금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바쁘고 지친 날들이 많다. 그렇지만 바쁜 가운데에서도 가끔씩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생겼다. 그 작은 꽃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그저 "멈추어 보기"였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에 잠시 멈춰 서서 깊게 숨을 들이쉬고 지금의 순간을 느끼는 것. 그것이 내게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삶의 무게는 어쩌면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따라 달라질지도 모른다. 과거의 나는 항상 미래를 걱정하거나, 지나간 일에 후회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작은 꽃이 내게 가르쳐준 방식으로 현재를 바라보기 시작하자 삶은 더 풍요로워졌다.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혹시 지금의 내게도 누군가 그런 '작은 꽃' 같은 존재로 남아 있을까? 나의 사소한 행동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또는 그저 지나가는 발걸음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울림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나의 일상도 조금 더 의미 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바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으면 좋겠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순간들, 그리고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 삶은 생각보다 넓고도 깊다. 그 안에는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수많은 보물들이 숨어 있다.
그 노란 꽃을 처음 본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 꽃은 아마도 지금은 사라졌겠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길을 걷다가 작은 꽃을 보면 발걸음을 멈춘다. 그때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며 살고 있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나의 삶도 누군가에게 작은 꽃 한 송이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그 우연 속에서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모여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 오늘도 한 번쯤은 멈춰 서 보자. 아주 작은 우연 속에서도, 우리가 기대하지 못한 큰 기쁨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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