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서
가을이 지나고 있다. 언젠가부터 나무의 색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초록에서 노란빛으로 스며드는 변화가 낯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가을이란 계절은 언제나 지나가는 것처럼, 감각으로만 기억에 남고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매년 같은 시각, 같은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나는 그 안에서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길을 걷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낙엽이 떨어진다. 그 떨어지는 소리가 조용하고, 무겁지 않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긴다. 이 소리가 떨어지는 순간, 나도 함께 흘러가는 느낌을 받는다. 나무는 가을을 맞이하면서 자신의 일부를 내려놓지만, 그것이 곧 새싹으로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가을은 죽음이 아니라, 잠시 휴식을 위한 시간이다. 그 휴식의 끝에 다시 피어나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매번 잊고는 한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올 것이다. 그 순환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어쩌면 가장 확실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순환 속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종종 잊는다. 겨울이 온다고 해서 준비를 서두르지 않으면 추위에 움츠러들 듯, 우리도 가을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나는 최근에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뭔가를 준비하는 일,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일. 살아가면서 내 자신에게 제대로 물어보지 않던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질문들은 나에게 늘 불편하다. 그래서 늘 회피하려 했다. 오늘도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묻고 싶지만, 그 대답을 알기 전에 일상 속 작은 일들을 치우고 나면 기회가 사라진다. 나를 다듬고, 나를 돌아보는 일이 늘 뒤로 미뤄지는 것이다.
가을은 참 속삭이는 계절이다. 그 속삭임을 듣기 위해선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그 속삭임을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속삭임이 내 마음 속에 큰 울림이 되어 다가온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내가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은 단순히 겨울을 맞이하는 준비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내 삶의 작은 변화를 불러온다.
누군가는 가을을 그리움의 계절이라 말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 계절을 정리의 계절이라 말하기도 한다. 나에게 가을은 과거와 현재가 얽혀있는, 그런 특별한 시간이 된다. 해가 짧아지고, 공기가 차가워질수록 나는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여유를 느끼게 된다. 바쁜 일상 속에서 늘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챙길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을이 지나가는 것이 아쉽지는 않다. 계절이 흘러가듯 사람도 흘러간다. 인생의 어느 순간, 우리가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면 그 길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가을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매우 중요한 계절이다. 언제든지 돌아봐도 될 것 같고, 그리워도 될 것 같은, 그러나 지나간 것들을 안아주는 듯한 그런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제 가을이 지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가을이 지나가는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끝자락에서 조금이라도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으려 한다. 그렇게 조금씩, 조용히 살아가는 것들이 내게 중요한 일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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