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서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길게 펼쳐진 하늘, 찬 바람, 그리고 나뭇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여름의 무더위가 지나고, 그 자리를 차지한 가을은 매년 나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단지 기온이 내려간 것만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는 느낌이다. 이 시기, 나는 언제나 좀 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어릴 때부터 가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그때는 그저 바람이 시원하고, 하늘이 맑다는 이유로 좋았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것들, 그리고 내가 놓쳐버린 것들, 그 모든 것이 떠오른다.
올해도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엔 내가 원했던 일도 있었고, 그렇지 않았던 일도 있었다. 가끔은 내가 잘 해냈다고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고, 또 다른 때에는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고 자책하며 자아비판을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만들어갔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가을이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이 나는 대로 산책을 한다. 도심의 바쁜 거리와는 달리, 공원이나 한적한 골목길에서의 걷기는 나에게 여유와 평화를 준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그곳에서 나 자신을 만나게 되는 기분이다. 내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나는 나만의 속도로 세상과 소통한다.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동차 소리, 그리고 바람의 흐름이 어우러져 나만의 작은 세상이 만들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가을의 풍경은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시간의 흐름과 그로 인한 변화가 담겨 있다. 나무들이 잎을 떨구며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은 우리 삶의 끝을 준비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끝이란 것이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임을 생각한다. 나무들은 겨울을 맞고, 또다시 봄에 새로운 잎을 틔운다. 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변화의 과정을 닮아가고 싶어서일 것이다. 변화가 두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변화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레기도 한다.
가을을 맞이하면서 나는 그동안 쌓여 있던 고민을 조금씩 풀어내고 있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고, 때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조금 더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가을은 그 자체로 느긋함을 허락해주는 계절이다. 고요한 풍경 속에서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 내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이 가을에는 작은 목표를 세웠다. 나만의 시간을 좀 더 가지기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 더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다. 내가 지나친 것들, 놓친 것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과정들을 반복할 것이다. 매 순간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은 끝자락에 다가갔다. 길게 펼쳐진 하늘은 이제 점점 어두워지고, 바람은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따뜻한 빛을 찾는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나는 그 안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결국 가을이 주는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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