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한 그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날
언제부터였을까? 나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일상 속에서 멀리서 바라보던 한 그루의 나무, 그 나무에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주변 풍경의 일부로, 시간과 함께 변하는 모습 속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존재였다. 아마도 내가 바쁘게 살아가던 그 시절, 나무는 그저 무심한 배경으로만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그 나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의 기억은 선명하게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날도 평소처럼 회사에서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무심코 길을 걷고 있던 나는, 길 끝에 서 있는 큰 나무를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별다른 의미 없이 그저 하나의 풍경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 나무가 예전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처음엔 그냥 흘려보냈다. 하지만 내가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그 나무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고, 뭔가 말하고 싶은 듯 그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무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한다고, 그동안 너무 자주 지나쳤던 나무는 정말 변했을까? 아니면, 내가 그동안 너무나도 바쁘게 살아오느라 그 나무가 내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놓쳤던 것일까? 그때부터 나무는 나의 눈에 다르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나무의 표면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 가지와 잎들이 한 줄기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 없이 나를 부르는 듯한 느낌. 내가 삶의 한가운데에서 느끼는 고독과도 비슷하게 다가왔다.
이 나무는 내가 지나치던 그 길목에서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나 또한 그 길을 수많은 번 지나갔지만 나무와 마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무가 내가 지나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 나무에게 다가갈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나무는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었고,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며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여러 갈림길을 선택해 왔다. 그 나무는 내가 어느 길로 돌아와도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나무가 기다렸던 것은 내가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와 나무를 바라볼 때까지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나무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그것은 내가 살면서 지나쳐온 시간,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 바쁘게 살아왔던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나무는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내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었다. 인생에서 우리는 너무 자주 다른 것들에 쫓겨 나무와 같은 존재를 지나친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어떤 형식이나 결과가 아니라, 순간의 여유와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지나쳤던 나무는 이제 더 이상 그저 풍경이 아니었다. 그 나무는 나에게 삶의 속도와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나무가 무심히 자라는 모습은 나에게 결국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속도에 맞춰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후, 나는 종종 그 나무를 찾았다.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나무 아래서 잠시 쉬기도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무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받아들이고,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나무는 내가 그곳에 가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나와 그 나무는 서로 조금씩 맞춰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무가 처음부터 기다렸던 것은 나를 향한 어떤 기대나 요구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 나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원할 때 그때까지 기다려준 것뿐이었다.
인생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아간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지나친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멈춰서 뒤를 돌아보고, 그동안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나무는 그런 과정 속에서 내게 한 번 더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 존재였다. 나무가 보여준 그 인내와 기다림은, 내가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는지, 그 속에서 잃어버린 중요한 것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나무처럼,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묵묵히 서서,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우리의 길을 다시 돌아서, 그 자리에 다시 돌아올 때, 우리는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만남이 나무와 같다면, 우리는 기다림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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