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어느 고요한 저녁이었다. 일상의 소음이 잦아들고, 하루를 정리하는 조용한 시간이 찾아왔다. 창문 밖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스치고, 전깃줄에 앉은 참새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비우며 보금자리로 향했다. 나는 책상에 앉아, 그날도 어김없이 한 잔의 차를 손에 들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왜 이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믿으면서도, 정작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내게 어떤 이로움을 줄지는 알 수 없었다.
몇 달 전, 나는 큰 결정을 내렸다. 직장을 그만두고, 오랜 꿈이었던 글쓰기에 전념하기로 한 것이다. 내 선택은 누군가에겐 낭만적이고 용기 있는 도전으로 보였겠지만, 가족이나 친구들 중 일부는 내 결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정말 글만 써서 살 수 있겠어?" 그들의 걱정은 정당했다. 나 역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는 내 삶을 더 나다운 방식으로 살고 싶었고, 그것이 지금의 결정으로 이어졌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날에도, 혹은 내가 쓴 문장이 하찮게 느껴지는 날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때로는 아침부터 밤까지 책상 앞에 앉아 한 줄도 쓰지 못한 채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이 모든 노력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정말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유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매 순간,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에 집중하는 일이었다. 글을 쓰며 몰입할 때의 희열, 불안과 두려움이 나를 엄습할 때의 초조함, 또 작은 진전을 이루었을 때의 기쁨. 이런 감정들이 바로 나를 살아있게 했고, 이유를 찾아 헤매는 일보다 훨씬 더 생생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내가 쓴 단편 소설 한 편이 지역 문학 공모전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작은 성과였지만, 그 순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동안의 모든 의문과 불안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창밖을 내다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길을 걷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어딘가 설득력이 있었다. 내가 그만둔 직장은 안정적이었고, 나름의 보람도 있었다. 친구들은 자주 말하곤 했다. "넌 정말 좋은 일을 그만둔 거야. 거기서 계속 일했다면 더 큰 성과를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반문하곤 했다. ‘그랬다면 나는 더 행복했을까?’
어쩌면 이유를 아는 것이란 감정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슬픔이나 기쁨을 겪을 때,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하면 그 감정을 조금은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결국, 이유와 상관없이 그 감정을 경험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성장하게 된다.
이 모든 생각의 끝에, 나는 글쓰기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금 되새겼다. 글을 쓰는 일은 이유를 찾는 작업이라기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것들을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비록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더라도, 나는 그것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그 안에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젊은 날의 고민과 갈등이 적혀 있었다. 그 당시에도 나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내가 얻은 답은 늘 같은 것이었다. ‘그냥 해보는 거야. 그리고 그 순간을 살아가는 거야.’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아는 것이 항상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때로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다만 지금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 가장 진솔한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으며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또 한 편의 글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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