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가을의 끝자락에서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가을은 어느새 끝자락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가을의 찬란한 색깔을 마음껏 즐겼고, 서늘한 공기에 깊이 숨을 쉬며 지나왔다. 그러나 가을이 끝을 맺고 겨울로 넘어가기 전에, 그 가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그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가을은 언제나 짧다. 여름의 더위가 지나가고, 가을의 서늘함이 찾아오면 그 여유롭고 포근한 기운은 금세 사라져버린다. 하루하루가 아쉬운 건, 그동안 숨겨왔던 자연의 모습들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나무들은 붉은색, 노란색, 오렌지색으로 물들고, 바람은 그 색깔들을 훑어 지나가며 고요한 가을을 만들어낸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이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기억하는 듯, 푸르게 보이던 땅을 감싸며 가을의 아름다움을 더해간다. 그것들은 모두 지나간 것들이며, 이제 겨울이 올 차례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끝자락에서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아직 남은 시간이 짧다는 걸 알면서도,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다. 이 가을을 떠나보내기 싫어, 아마도 그것은 가을의 끝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일 것이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오겠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결국 지나가고 만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더 그 순간이 아쉽고 그리운 것이다.

어릴 적, 가을이면 엄마와 함께 집 근처의 공원에 가곤 했다. 낙엽을 밟으며 걷는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그때의 공원도, 낙엽도 모두 변해버렸지만, 그때의 느낌만큼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가을이면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어떤 때는 바람을 맞으며 그 기억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리운 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알기에, 나는 이 가을의 끝자락에서 고요하게 숨을 쉬며, 그 모든 것들을 떠올리고 있다.

가을이 끝나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반복되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그 순간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 한 번쯤 멈춰 서서, 그 순간을 진지하게 마주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가을의 끝자락에서의 작은 여유가, 우리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을의 끝을 아쉬워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되새긴다. 그 모든 것이 지나가고, 또 다시 새로운 계절이 시작될 것이다.

그 순간순간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지나간 시간은 결국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순간을 진심으로 살아가야 한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나는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그 시간들을 아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렇게, 한 계절이 끝나면 또 다른 계절이 올 것이다. 그 흐름을 이해하고, 그 흐름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가을의 끝자락에서, 나는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더 나아갈 길을 준비하며, 그 끝을 담담히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