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여유

어느 날의 여유

어느 덧 가을이 깊어지고, 바람은 차가워졌으며 나뭇잎은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고 있다. 삶의 일상이 바쁘고 복잡할수록, 한 번의 깊은 숨이 그리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종종 밖으로 나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것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쁘고 세상과 어울려 살아간다 해도, 가끔은 내 마음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나의 얼굴을 스치고, 떨어진 낙엽들이 바닥에 고요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걷기 시작했다. 특별한 목적도 없었다. 그저 그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고요함과 평온을 즐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걷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종종 ‘걷는 것’이 단순한 이동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에게 걷기는 단순히 장소를 이동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걷는 동안 나의 마음은 자꾸만 풀어지고, 그동안 밀려왔던 생각들이 하나하나 정리된다. 마치 머리 속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는 기분이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가로수를 지나면서, 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었던 시간들,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는 바쁜 날들, 그리고 업무에 쫓기던 날들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그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가을 햇살이 내 얼굴을 비추며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차가운 바람과 따스한 햇살의 조화가 어찌나 좋았던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자연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바뀌고,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말을 건네듯 다가온다. 나는 그 속에서 무언가를 배운다. 가을의 하늘은 넓고 고요하다. 나는 그 고요함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눈을 감고 잠깐 숨을 고르며, 나는 그동안 놓쳤던 작은 것들을 되새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이 바쁘게만 살았고, 그 바쁨 속에서 놓친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얼마나 자주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가끔은 삶이 나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그 질문에 답하는 법을 알지 못한 채, 그냥 바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내 마음을 다시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내가 원하는 길인지, 아니면 그저 다른 사람들의 길을 따라가는 것인지 묻는 것이다. 오늘처럼, 이렇게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나에게 큰 의미를 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떠있는 구름이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하늘은 변화하고 있었고, 나도 변화하고 있었다.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있지만, 나는 그 흐름을 쫓기만 하는 것보다는 때로는 그 흐름을 잠시 멈추고 내 자신을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렇게 오늘 하루,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다시 일어섰다. 기분이 한층 더 가벼워졌다.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가 된 것 같다. 이 시간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내가 나를 돌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렇게 작은 여유를 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든 일상이 이어져도, 잠시 멈추어 서는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오늘처럼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여유롭게 걷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나를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