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지만, 어느새 잊혀진 것들에 대하여: 바람, 냄새, 그리고 추억의 단편들
우리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때로는 너무 빠르게, 때로는 너무 더디게 느껴지지만, 그 변화의 속도에 관계없이 우리는 늘 그 속에 휘말려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놓쳐버리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손에 쥐려 했으나 스르르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우리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가 어느새 사라져버린 것들. 그중에서도 나는 바람과 냄새, 그리고 추억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머리카락 사이를 스쳐가는 감촉, 그리고 피부 위에 닿는 차가운 공기의 움직임. 어릴 적 나는 바람을 느끼는 순간들이 좋았다. 봄날 따뜻한 햇살 아래서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얼굴을 내밀고, 여름날 강한 소나기 뒤에 찾아오는 선선한 바람에 두 팔을 벌리곤 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바람은 점점 그 존재감을 잃어갔다. 바쁜 일정 속에, 닫힌 공간 속에 갇혀 사는 나날 속에서 바람이 내게 말을 걸어도 나는 그것을 듣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바람 한 줄기가 내 뺨을 스치며 지나갈 때, 나는 그 잊혀진 감각을 다시 떠올렸다. 그제야 나는 바람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냄새 역시 우리가 잊고 사는 중요한 감각 중 하나다. 냄새는 단순히 공기 속의 어떤 성분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다.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된장찌개 냄새를 맡으며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따뜻함을 배웠다. 동네 골목 어귀에서 나는 풀 냄새와 땅 냄새는 나를 어린 시절로 되돌려주는 타임머신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이 냄새라는 감각도 점점 무뎌지고 말았다. 나는 점점 인공적인 향수와 공기 청정기로 채워진 공간 속에서 살게 되었고, 자연의 냄새를 느낄 기회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어떤 날, 오랜만에 숲 속을 걷거나 바닷가를 거닐 때 나는 냄새가 나를 다시 과거로 데려가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잊고 살았던 또 다른 삶의 조각들을 되찾는다.
그리고 추억. 추억은 바람과 냄새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어떤 이에게 추억은 오래된 사진첩 속에 담긴 이미지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한 곡의 음악이나 특정한 장소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바람과 냄새가 자주 추억의 단서가 된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가 어릴 적 가을 소풍을 떠오르게 하고, 낯익은 냄새가 할머니의 손길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러나 추억은 우리가 붙잡으려 하면 할수록 멀어져 간다. 그것은 물리적인 형태를 가진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추억은 늘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필요로 할 때, 가끔은 뜻하지 않은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 삶에는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가득하다. 바람, 냄새, 그리고 추억은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요소다. 비록 그것들이 늘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로 그것들을 놓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순간들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앞으로 나는 바람을 느끼고, 냄새를 맡으며, 추억 속에 잠기는 일을 더 자주 하고 싶다. 그것은 단지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과정일 것이다.
삶이 아무리 바쁘고 복잡하더라도, 가끔은 멈춰 서서 바람이 내 뺨을 스치는 감각을 느껴보자. 그 순간 우리는 잊고 있던 어떤 중요한 것을 되찾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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