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우리가 남기는 발자국은 영원히 기억될지도 모른다
한때는 시간이 무한하다고 믿었다. 어린 시절의 하루는 마치 영원처럼 길었고, 한 해가 끝나기까지는 끝없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학교에서 종례가 끝나기만을 바라며 손가락으로 시계의 초침을 따라가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고, 그 느린 흐름이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는 어른들이 말하는 '시간이 빠르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시간은 언제나 여유롭고, 나를 기다려주는 존재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얻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때마다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갔다. 친구들과 만나던 날이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는 서로의 일상에 치여 몇 달씩 연락을 놓치는 일이 잦아졌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벌써 이 달이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볼 틈도 없이 현재에 쫓기며 살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도 어느 날, 문득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 계기가 찾아왔다.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는 바쁜 하루였다.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심코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었다. 작년 여름 여행 사진이 눈에 띄었고, 나는 그 사진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사진 속 나는 웃고 있었고, 그날의 햇빛은 따스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간단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 후로 나는 종종 과거의 사진들을 꺼내보는 습관이 생겼다.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친구들과 밤새 수다를 떨던 날, 가족과 함께 소풍 갔던 날, 혼자 카페에 앉아 책을 읽던 평범한 일상까지. 그때는 그저 흘러가던 순간들이 지금 와서 보니 너무나 소중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리워질 거라는 사실을.
과거를 돌아보며 깨달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사진 속에서 아무리 행복했던 순간을 보더라도,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두 번째는, 우리가 남긴 기록들은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사진, 일기, 손편지처럼 우리가 남긴 작은 흔적들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조각이 되었다. 그것들은 우리의 발자국과 같았다. 우리는 지나간 길을 다시 걸을 수는 없지만, 그 길에 남겨진 발자국을 통해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되새길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국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지만, 그 흐름 속에서 무엇을 남길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나는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때로는 누군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기억을 만들어가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순간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시간을 쫓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동반자로 삼아 걸어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는 오랜 친구와의 대화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시간에 대한 비유로 강을 말했다.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그 강에는 우리가 만든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다리를 놓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물 위에 손을 담글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인상 깊었다. 시간은 우리의 통제 밖에 있지만, 그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지금 나는 나의 작은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매일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 느낀 감정, 마주한 풍경, 누군가와 나눈 대화들을 짧은 메모로 남긴다. 그것이 나에게는 미래의 나를 위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이 순간들이 또 그리워질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나는 지금 남긴 발자국들을 따라가며 다시금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남기는 발자국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발자국들이 모여 나의 삶을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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