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길
가을의 끝자락에서 나는 혼자 길을 걷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길 위에 떨어진 단풍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붉게 물든 나무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길은 고요하고,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금 나는 매우 평온한 마음으로 그 길을 걷고 있었다.
혼자 걷는 길은 언제나 특별하다. 사람들이 많고 복잡한 도시 속에서는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며, 시간에 쫓기듯 살아간다. 하지만 고요한 길에서는 내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 내 발걸음이 땅에 닿을 때마다 나의 숨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린다. 그 소리가 마음을 정리해준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점차 흐릿해졌던 내 마음을 되찾을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혼자 걷는 길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과 놀 때도, 혼자서 책을 읽거나 나무 아래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왜 혼자 있기를 좋아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혼자 있을 때 더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나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고독함이 아니라 자유로움이었다. 내 마음대로, 내 속도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때는 내가 '혼자'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함을 준다고 느꼈지만, 그건 내가 여전히 세상과의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부딪히면서 나는 진정한 '혼자'의 의미를 배우게 되었다. 혼자 있는 것과 외로움을 구분할 수 있어야 했다. 외로움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여전히 외로울 수 있지만, 진정한 '혼자'는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혼자 걷는 길은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내가 지나온 길, 내가 선택했던 길들에 대해 생각한다. 때로는 선택의 순간들이 아쉬워지기도 하고,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들은 내가 걸어온 길에서 얻은 교훈들이었다. 내가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결국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길들 속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점차 알아갔다. 길을 걷다 보면 자주 멈추고 돌아보게 된다. 그때 나는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시 설계해본다.
이 길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오늘 내가 걷는 이 길도 내 삶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나는 내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길을 걷는 동안 나의 생각은 조금씩 정리되고, 마음의 짐은 가벼워진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도 그 길이 결국에는 하나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내가 걷는 이 길에서 깨닫는다.
이 길이 끝나면 또 다른 길이 시작될 것이다. 삶은 언제나 그렇게 끝과 시작을 반복하며 이어진다. 어쩌면 그 끝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나는 길을 걷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오늘 내가 걸어가는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그 길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길을 걷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내 마음에 스며든다. 바람의 냄새,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저 멀리 펼쳐진 산의 모습까지. 모두가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혼자 걷는 길이지만, 사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나를 함께 걷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단 하나의 모습으로.
그러므로 혼자 걷는 길은 단지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내 마음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성장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 내가 걷는 이 길을 마치면 내일 또 다른 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길에서도 또 다른 나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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